첫 몽골의 기억은, 5월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추위로 가득차 있다. 패딩과 침낭에 둘둘 쌓인 채로 새벽에 겨우 눈을 떠 별을 보곤 했다. ‘몽골에 다시 가야한다.’ 촘촘히 박힌 별과 그 사이 사이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나는 몽골에 있으면서도 몽골에 다시 가야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불가항력의 사랑이었다. 초원과 사막, 별을 보고 나니 이 땅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바로 다음 해의 몽골 여행을 계획하면서 이영산 작가의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를 읽었다. 책을 읽자 일상에 묻혀 가물가물해진 몽골의 장면 장면이 눈 앞에 나타났다.
초원은 적막했다. 얕은 구릉이 층층이 겹쳐 대지는 주름이 깊은 이마처럼 보였고, 그 주름마다 제각기 하나의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과 대지 사이를 침묵이 가득 채우고 있다. 어떤 사건도 상황도 제거돼버린 원초적 공간, 텅 빈 것들이 불러일으키는 가득한 긴장, 하늘이 내려와 길 위에 선 자의 마음을 차분히 눌러준다.
몽골은 아직도 휴대폰이 터지는 곳이 많지 않다. 유심을 갈아끼어도 크게 도움 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오랜만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바람 소리 말고는 들리지 않는 초원의 적막함을 떠올렸다.
밤마다 우리는 보드카를 마셨는데, 만 원이 채 안되는 징기스칸 보드카를 따라 마시면서도 별 말을 나누지 않았다. 묵묵히 술잔을 따르고, 마시고, 숨 죽여 바람 소리를 듣던 밤이 기억난다. 그새 초원을 닮아가기라도 했던걸까.
사람만이 아니라 가축에게도, 더 나아가 늑대며 여우 같은 야생동물에게까지 인정이 닿아 있었다. 담배 한 개비의 인사를 나누겠다고 수십킬로미터를 달려온 사람이나, 집을 비웠을 때 혹 찾아올 손님을 위해 음식을 준비해두고 나간 집주인이나, 땀을 뻘뻘 흘리며 아무 상관도 없는 야생동물들을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저 유목민이나 모두가 대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처음 몽골은 가이드를 끼고 갔다. 가이드는 이정표 없는 땅을 거침없이 달렸다. 낡은 봉고차는 뿌연 모래 사막을 만들며, 길위에 자국을 남겼다. 때로는 모래가 정신없이 차 안을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괘념치 않았다. 우리는 포장이 되지 않아 덜덜 떨리는 도로를 ‘마사지 로드’라며 킬킬댔다.
저 멀리 다른 차가 만드는 모래 둥지를 보는 것은 또 하나의 재미였다. 승차감이란 1도 없는 곳, 언제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해야할지도 모르고, 아무 곳이나 용변을 봐야하는- 심지어 음식도 더럽게 맛없는 그 몽골에서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린 적이 없었다.
가이드는 중간 중간 게르가 보이면, 들러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나눴다. 아니, 이 사람은 가는 길에 친구란 친구는 다 만나나? 싶을 정도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인사를 나누고, 길을 물었던 것 같다.
몽골인은 누구에게나 마음을 여는 데에 익숙하다. 책을 읽으며 여행 중에는 미처 몰랐던 몽골인들의, 유목민들의 삶을 깊숙히 알게 되어 기뻤다. 이 나라를 조금 더 사랑할 준비가 된듯 하다.
유목민은 개를 게르 안으로 들이지 않는다. 영하 사십 도의 혹한에도 개들은 게르 바깥을 지켜야 한다. 각자의 공간에서 홀로 서는 것, 그것이 사람과 개의 업무 분담이자 약속이다. 함께 또 따로 사는 생이기에 개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유목민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보지 않는다. 인간은 거대한 자연의 일부임을 순리대로 받아들인다. 채소, 식물 종류를 먹지 않는 것도- 어찌 사람이 동물이 먹는 풀을 뺏어 먹을 수 있느냐는 생각때문이란다. 사람은 고기를 먹고, 동물은 풀을 먹어야 한다고. 그래서 아무 거나 먹어치우는 돼지를 싫어한다고. 각자의 역할, 각자의 의무, 각자의 삶에 충실하는 것- 그것이 유목민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알타이산이 가지는 또다른 의미는 사라짐이다. 고향을 바람 속에 묻어둔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고향이다…그들에게 과거는 지나간 시간에 불과하다. 과거는 흘러갔다.
유목민은 본인이 죽을 날을 정한다. 잔치를 열고, 여러 사람들과 즐겁게 놀다가 가장 맛있다고 여기는 양의 엉덩이 비계를 입에 문다. 그러면 손주가 비계를 툭 치고- 비계가 목에 걸린 노인은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의 시각으로 보기엔 다소 잔인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죽음의 방식이지만, 이들은 척박한 땅에서 이사를 다니며 살아가는 민족. ‘자원의 배분’을 가장 중요시 여기기에 이렇게 맞이하는 죽음은 자연스럽고 깨끗한 죽음이라고 한다.
몽골 여행 두 번, 책 한 권을 읽고 몽골인들의, 유목민들의 삶과 생각을 어찌 내가 다 헤아리겠느냐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동한 좁아지고 퍽퍽해진 내 마음 살림이 몽골을 떠올리면 넓어진다는 것이다. 대자연의 힘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할한 땅과 그 땅위의 하늘과 별, 끝이 없는 곳을 바라보는 몽골인들의 깊고 어딘가 초연한 눈동자를 보면 누구나도 그러할 것이다.
空의 영역. 비어 있어서 더 아름다운 몽골. 책을 읽으며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한없이 자유롭게 사는 그들의 삶을 엿보았다. 탐욕하지 않는 삶, 분수에 넘쳐 아등바등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일생과 일생의 작별이 어찌 짧을 수 있을 것인가. 바이르테라는 말에는 그 그리움의 크기, 그리움의 두께가 담겨 있는 것이다. 내가 초원에 대한 순정을 갖게 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곤 한다. 광활한 초원, 그래서 느끼는 한없는 자유, 인적 없는 쓸쓸함과 외로움, 외로워서 더 반가운 사람들.